토막글

20250603 [시간이 없다]

일상수집가 2025. 6. 3. 07:03

 시간이 없다. 시간이 없어서 못했어. 시간이 없어서 죽겠어. 같은 표현을 자주 한다. 시간은 대체로 내 행동에 있어 제약이 된다. 오늘은 대선이 있는 날이다. 투표를 하고 나면 빨간 날이라는 소리다. 불과 2년 전만 하더라도 빨간 날은 내게 '가게 여는 날'이었다. 평소에 오지 못하던 손님들이 책방을 즐길 수 있는 날 정도로 생각했다. 빨간 날에 가게에 나가 노래를 틀어놓고 문을 열고 시간을 즐겼다. 엄마에게 말했다. "휴일이 되면 아무것도 못해서 일이 다 밀려." 아이들이 생긴 이후로 빨간 날에 가게를 여는 건 꿈만 같은 이야기이다. 어린이집이 휴원을 하기 때문에 아내와 종일 육아를 해야 하는 날이 돼버렸다. "그건 육아하는 엄마들끼리 하는 말인데." 엄마는 그렇게 이야기했다. 나는 맞장구를 치며 웃었다. 이번 주는 휴일이 이틀이다. 화요일과 금요일. 덕분에 내 업무 일정엔 비상이 걸렸다. 혼자 집안일을 하고 업무를 돌보는 시간과, 출근해야 하는 하루가 묶여버렸다.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가야 하지. 마음이 급해졌다. 어제 잠들기 전에는 갑자기 주문해야 하는 재료들이 떠올라 새벽 한 시에 먹과 종이를 주문했다. 놓쳐버린 문자에 답장을 하려다 그래도 이건 아침에 보내야지 하고 잠이 들었다. 난 늘 시간이 없다. 시간이 언제 있었더라 더듬어보니 늘 없었던 것 같다. 시간의 빈곤은 항상 결과에 대한 아쉬움으로 찾아온다. 일이 이렇게 밀리기 전에 미리 해놓을 걸. 시간이 더 있었다면 더 마음에 들게 작업할 수 있었을 텐데. 여태 돈 안 벌어놓고 뭐 했어. 같은 형태로 후회는 스며든다. 조금 일찍 일어나서 가벼운 정신으로 일정을 정리하다가 갑자기 부끄러움이 생겼다. 시간이란 원래 없다. 본디 정해놓지 않으면 정해진 시간 같은 건 없다는 뜻이다. 글 쓸 시간을 마련해 두어야 글 쓸 시간이 생긴다. 읽을 시간을 마련해 두어야 읽을 시간도 생긴다. 요리할 시간을 마련해 두어야 요리를 하게 되고, 은행 갈 시간을 챙겨두어야 은행도 다녀오게 된다. 이 간단하고 명확한 사실을 나는 왜 몰랐을까. 아이들이 깨기 전에 책을 읽고 글을 쓸 시간을 마련해 행동했다. 아무래도 나는 늘 시간이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