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막글

20250612 목 [지금 우리는]

일상수집가 2025. 6. 12. 13:48

 전시장에 구석에 테이블 하나를 펼쳐 놓았다. 작업 도구들과 빈 엽서를 꺼내 놓고 손님이 오길 기다린다. 손님이 없는 시간에는 노트북을 펼쳐 일기를 끄적인다. 한동안 일기 쓸 시간과 체력을 마련해두지 못했다. 잊혀지면 아쉬울 것만 같은 순간들은 다행히 카카오톡 나와에 채팅에 끄적여놓았다. 그 작은 기억의 조각들을 단서로 지나간 시간의 퍼즐을 맞춘다. 그렇게 기억은 단어가 되고, 줄글이 되고, 문장이 된다. 미루고 미루었던 잠깐의 순간이 영원한 글로 탄생하는 순간이다. 대단한 시작도 없이 주머니를 뒤지듯 주섬주섬.

 화요일에는 전시 설치가 있었다. 익숙한 얼굴의 작가님들과 오랜만에 모여 인사를 나누었다. 작품을 가지고 나와 위치를 잡고 작품을 걸고 조명을 배치한다. 내 작품을 옮길 땐 가벼운 마음이지만, 다른 작가님의 작품을 잡으면 온몸에 긴장 센서가 발동된다. 훼손되지 않게, 떨어지지 않게 조심조심! 오랜만에 사다리에 올라 조명을 교체하니 천안볼트를 운영하던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 작은 전시장에 매달려 조명을 갈고 페인트 칠을 하던 기억들이 쏟아져내렸다. 오랜만에 그때가 그립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무리 단계에서는 아내와 우주가 전시장에 놀러 왔다. 우주는 한 시간을 열심히 뛰어다녔다. 넓은 공간과 소리가 울리는 환경은 우주에게 가장 큰 놀이터다. 전시를 설치하는 일은 단순히 작품을 거는 행위가 아니라 땀 흘리고 추억을 묻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소소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근황을 이야기하고, 서로의 작품을 구경했다. 사실 좀 어색하다고 생각했던 '지금 우리는'이라는 전시의 제목이 지금 상황과 같아 친근하게 느껴졌다. 지금 우리는 복작복작하고 꼬불꼬불한 각자의 길을 오가다가 여기 한 점에 모였다. 이 점을 지나면 또 각자의 길로 발걸음을 옮길거다. 우린 언제 만나도 지금의 우리가 되어 함께 하겠지. 이렇게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조금은 든든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