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토막글

20250525 [안경]

by 일상수집가 2025. 5. 25.

 안경을 바꿨다. 성인이 된 이후로는 2년마다 한 번씩 안경을 교체했다. 이번에는 4년 만이었고 이유는 두 가지였다. 시력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이 하나였고, 다니던 안경점이 없어진 것이 다른 이유였다.
 시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한 시점은 국민학교 2학년 때였다. (나는 2학년 때까지 국민학교를, 3학년부터 초등학교를 다녔다.) 그때는 디지털 기기도 딱히 없던 시절이라서 아마도 책이 원인이었을 거라 짐작한다. 방에는 움푹 들어간 공간이 있었고 그곳에 책상이 놓여 있었다. 빛을 등지고 책을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서 책을 많이 읽지도 않았는데 시력이 떨어졌다.라고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다. 그냥 내 시력에 그럴듯한 책임을 붙이고 싶어서 그렇다. 1.5였던 시력은 순식간에 0.5가 되었다.
 처음 갔던 안경점은 내 책방에서 도보로 2분이 채 걸리지 않는 곳에 위치해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안경사 아저씨는 우리 가족과 오랜 인연이 되었다. 내 시력은 매년 1씩 떨어졌고, 매년 아저씨를 만났다. 안경점에 가서 하는 이야기라고는 시력검사를 하며 숫자를 읽는 것뿐인 나였지만 그냥 믿음이 갔다. 나와 엄마는 언제나 형은 가끔 안경을 썼고, 우린 그 안경사 아저씨가 자신의 가게를 차린 후에 아저씨를 따라 안경점을 옮겼다.
 어느덧 내 나이는 서른에 가까워졌고 혼자 안경을 바꾸러 가는 나이가 되었다. 부모님과 동행하지 않아도 인사를 하는 사이가 되었고, 첫 책이 나왔을 때 '안경'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는 핑계로 안경을 바꾸러 가서 아저씨에게 책을 선물했다. 아저씨는 이미 할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안경을 바꾸고 2년이 채 되기도 전에 문자가 하나 도착했다. 그동안 ㅇㅇ안경점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주일 후로 영업을 종료한다는 문자를 받았지만 사는게 바빠 찾아가지는 못했다. 뭔가 답장을 하고 싶었는데 041이 붙은 전화번호여서 그러지도 못했다. 그 후로도 딱히 가고 싶은 안경점을 찾지 못해서 같은 안경을 썼다.
 반년 전 코받침이 부러졌다. 나는 안경을 바꾸려면 며칠이 걸리는 시력이기에 안경이 없으면 가장 곤란한 차에 스페어 안경을 둔다. 스페어 안경이라 해봤자 그전에 쓰던 안경이지만. 나는 그때의 안경을 꺼냈다. 그러고도 마땅히 가고 싶은 안경점을 찾지 못해서 오래된, 그리고 기스난 안경을 그대로 쓰고 다녔다.

 우주가 감기에 걸렸다. 정확히는 하루에게 옮았다. 오전 강의로 시간을 내지 못해서 우주를 조금 일찍 하원 시키고 병원에 갔다. 그러면서 부러진 안경을 챙겨갔다. 같은 건물에 안경점이 있는 탓이다. 수리를 여쭈어보았다.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들었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더 얇은 렌즈와 더 가벼운 안경테를 맞출 수 있었다. 우주가 있어서 시력 검사는 하지 못하고 내일 들르겠다며 집으로 향했다. 다음날 어린이집 부모 상담을 마치고 네 가족이 함께 안경점으로 향했다.
 안경점 소파엔 아기와 엄마가 있었다. 안경사가 같이 소파에 있었던 걸 보면 가족인듯싶었다. 시력검사를 하고 어제 봐둔 안경을 골랐다. 안경테의 색깔을 고민하다가 뭔가 변화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붉은색의 안경테를 골랐다. 아내도 안경을 바꾼지 오래라며 나와 같은 투명한 테를 골라 안경을 바꿨다. 안경사님의 아이는 이제 6개월이라고 했다. 그냥 비슷한 또래의 아이가 있을 뿐인데 더 친밀감이 느껴졌다. 우주는 엄마의 시력검사를 기다리며 소파에 있던 스마일 인형을 안고 있었다. 이거 죠아~ 이거 죠아~ 를 반복하며 애정을 담아 끌어안았다.
 고작 안경 하나를 바꾸면서 세월이 많이 변했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였던 내가 아이의 아빠가 되는 과정에서 누군가는 할아버지가 되었고 은퇴를 했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은 번듯한 직장을 다니거나 아이의 아빠가 되어있다. 나는 늘 돈이 부족한 하루를 건너고 있지만, 스스로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유모차를 끌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그 너머를 생각했다. 이제는 누군가를 위해 살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십 대를 관통했던 꿈을 향한 달리기는 삼십 후반을 지나며 풍경을 누리는 산책으로 바뀌었다. 언젠가 당뇨가 심해지거나 노화가 시작되면 내 시력은 다시금 떨어질 거다. 어릴 적부터 품었던 두려움, 눈이 보이지 않게 되면 어쩌지라는 걱정은 지금도 머리 한 편을 지그시 누르고 있다. 그때가 오기 전까진 걸음을 멈추지 말아야지. 나를 빤히 올려다보는 하루를 보며 싱긋 웃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토막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50526 [재접근기]  (0) 2025.05.26
20250525 [이름]  (1) 2025.05.25
20250524 토 [우주의 매력]  (0) 2025.05.24
20250523 금 [마음가짐]  (0) 2025.05.23
20250522 목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0) 2025.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