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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글

20250529 [잠]

by 일상수집가 2025. 5. 29.

 결국 새벽 3시 반에 글을 쓴다. 오늘도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이야기이다. 하루를 재우면서 함께 잠이 들었다가 자정 즈음 불쾌한 이유로 잠에서 깼다. 나는 한 번 잠이 깨면 쉽게 잠에 들지 못한다.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불쾌한 감정을 잠재운다는 목적으로 맥주를 한 캔 뜯고 넷플릭스를 켰다. 중간중간 장면을 놓쳐도 그만인, 생각하지 않고 볼 수 있는 영화를 틀었다. 이럴 땐 여러 번 보았던 영화가 더 좋다. 비슷한 연유로 자막을 읽지 않아도 되기에 한국 영화를 더 선호하지만 오늘은 외국 영화를 틀었다. 영화를 보며 맥주를 조금씩 마시고 빨래를 건조대에 걸고 식기세척기에서 나온 젖병의 물을 털었다. 우주가 저녁밥 먹는 영상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SNS에 게시하기도 했다. 피곤함을 다 게워내지 못하고 잠에서 깨면 항상 이렇다. 무언가 산만하고 뭉개지는 느낌이다. 다 무슨 소용이냐 싶어 잠을 청하려다가 그래도 글을 써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습관이라는 게 신기하구나. 이 시간에 이 노곤함에도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다 들다니.

 내 인생은 항상 잠과의 전쟁이었다. 잠과 연관된 첫 기억은 초등학교 3학년 때로 돌아간다. 잠이 들기 직전이었다. 불현듯 다음날 미술 숙제가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책상에 앉아 그림을 그렸다. 자는 시간을 한참 지나버려서 졸리고 짜증이 났다. 그림은 마음대로 그려지지 않았고, 언제 끝날지도 감이 오질 않았다. 졸면서 울면서 그림을 그렸다. 그게 잠과 연관된 첫 기억이다. 6년을 건너 중학교 3학년 때는 공부하는 재미에 맛들려 있었다. 물론 공부가 재미있었다는 건 아니다. 고등학교 입학을 준비해야 하니 입시 학원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나는 제일 끝반이었다. 나보다 윗 반에 마음이 가는 친구가 있었고, 그 친구와 같은 반이 되고 싶어 공부를 시작했다. 10개월 동안 나는 10번째 반부터 시작해서 한 반 한 반 올라가며 가장 높은 반까지 올라갔다. 물론 그 과정에서 마음이 가는 친구의 반은 진작에 넘어가버렸지만, 스스로 단계가 높아지는 과정이 눈에 보이니 그게 참 즐거웠었다. 나는 이때 인생에서 가장 깊은 자신감의 뿌리가 생겼다. 나도 무언가 노력하면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그 당시 나는 하루 4시간 남짓 잠을 자며 지냈다. 일주일에 30시간을 넘지 않는 수면 시간이 훈장같이 느껴졌다. 학교 쉬는 시간이 되면 자리에서 눈을 붙이곤 했다. 그 짤막한 10분에 가위도 자주 눌렸다. 그렇지만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어려서부터 있던 불면증도 자연스레 해결되었다. 해결이라기엔 애매하지만, 그때는 잠이 너무도 부족했기에 눈만 감으면 잠이 들었다.

 나는 어둠을 무서워했다. 어두운 곳에 혼자 있다는 사실이 극도로 무서웠다. 하지만 무섭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했기에 가족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형과 같이 자고 싶었지만 형은 당연스럽게도 혼자인걸 더 선호했다. 형의 방문은 잠겨있었고 나는 그게 속상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나는 방 모서리에 콕 박혀서 잠을 청했다. 엄마가 만든 큰 베개를 안고 잠을 청했다. 불을 켜면 혼나니까 불을 켜진 못했다. 대신 라디오를 틀었다. 잠이 오지 않아 신해철의 고스트스테이션까지 다 들어버릴 때도 많았다. 그 방송은 새벽 3시에 끝났다. 그 방송이 끝나고 나면 팝송 방송이 진행되었는데 그 시간 즈음에나 몽롱해져서 잠이 들곤 했다. 내가 아침 7시에 학교에 갔던 걸 생각하면 나는 학창 시절 언제나 토막잠을 잔 것 같다. 나는 학교에 가서야 햇살이 들이차는 교실에 앉아 첫 교시가 시작할 때까지 잠을 잤다.

 대학교에 들어가고 나서야 잠을 좀 넉넉히 잤다. 물론 술에 취해 자는 경우가 더 많긴 했지만. 이 때는 제법 길게 잠을 잤다. 생각해 보니 게임을 하느라 밤에 깨어있고 낮에 잘 때도 많았다. 이때가 가장 많은 잠을 잤지만 그렇다고 건강한 잠도 아니었던 것 같다. 그 짧고 달콤한 잠의 시간이 끝난 건 캘리그라피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좋아하는 걸 하자니 자는 시간이 아까웠다. 잠이야 좀 덜자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다음날 서울로 캘리를 배우러 가야 하면 왕복하는 차 시간을 계산했다. 차에서 그만큼 잘 수 있으니까 밤에 그만큼 덜 자야지. 고속버스에 타거나 지하철에 오르면 도착 3분 전쯤 진동 알람을 맞춰두고 잠에 들었다. 오가는 시간이 아까운 날은 찜질방에서 잠을 잤다. 작업도 낮보다 밤에 잘 됐다. 나는 자연스럽게 올빼미형 인간이 되었다. 그렇게 밤낮이 바뀌어 몇 년을 살았다. 어느 날 밤 다리가 지독히도 아팠고, 나이 서른에 당뇨를 얻게 되었다. 잠과 식생활 모든 게 정상인게 없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올빼미 생활을 포기했다는 것 빼고 나의 잠은 언제나 비슷했다. 하루 다섯 시간 정도 잠을 청했고, 낮잠을 꼭 30분 정도 자는 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러던 중 내 잠에는 가장 큰 위기가 찾아왔다. 우주와 하루의 탄생.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수면 패턴이 무너졌다. 신생아 시절에는 은유와 함께 불침번 서듯 돌아가며 잠에서 깨야 했고 지금도 잠귀가 예민한 나는 아이들이 뒤척이면 잠에서 깬다. 하루 잠에 두세 번씩 눈을 뜨는 건 그나마 아이들이 밤잠을 깊게 자기 시작하면서 나아진 모습이다. 올해 4월 즈음, 장모님이 아이를 돌봐주시던 날 깊은 잠을 잤다. 8시간 정도 깨지 않고 잠을 잤다. 머리가 맑았다. 평소에 어떤 몽롱함으로 세상을 살았나 흠칫 놀랄 정도였다. 돌이켜보니 우주가 태어난 이후로 처음 갖는 8시간 연속 수면이었다.

 의지와 관계없이 잠이 부족해지고 나니 이제야 잠의 소중함을 느낀다. 당뇨도 있으니 더욱 그렇다. 요즘 아이들은 9시 전후로 잠이 든다. 나는 일부러라도 아이들과 함께 잠을 청한다. 매일 7시간 넘게 자려 노력하고 있다. 물론 그렇지 못한 날이 더 많지만 그래도 주에 두세 번 정도는 7~8시간의 잠을 청하는 것 같다. 그렇게 자고 난 다음날은 무엇을 해도 명쾌하다. 푹 잔 후의 아침 산책은 이전에 즐겨보지 못한 즐거움이다. 10대에는 두려움 때문에 잠을 못 잤고, 20대에는 아까워서 잠을 안 잤다. 30대엔 습관이 되어 늦은 잠을 청했고, 30 후반이 되어서야 잠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이런 글을 새벽 4시 반에 적고 있는 게 아이러니지만, 나의 인생에 충분한 잠이 스며들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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