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300 20250603 [시간이 없다] 시간이 없다. 시간이 없어서 못했어. 시간이 없어서 죽겠어. 같은 표현을 자주 한다. 시간은 대체로 내 행동에 있어 제약이 된다. 오늘은 대선이 있는 날이다. 투표를 하고 나면 빨간 날이라는 소리다. 불과 2년 전만 하더라도 빨간 날은 내게 '가게 여는 날'이었다. 평소에 오지 못하던 손님들이 책방을 즐길 수 있는 날 정도로 생각했다. 빨간 날에 가게에 나가 노래를 틀어놓고 문을 열고 시간을 즐겼다. 엄마에게 말했다. "휴일이 되면 아무것도 못해서 일이 다 밀려." 아이들이 생긴 이후로 빨간 날에 가게를 여는 건 꿈만 같은 이야기이다. 어린이집이 휴원을 하기 때문에 아내와 종일 육아를 해야 하는 날이 돼버렸다. "그건 육아하는 엄마들끼리 하는 말인데." 엄마는 그렇게 이야기했다. 나는 맞장구를 치며 웃었.. 2025. 6. 3. 20250529 [잠] 결국 새벽 3시 반에 글을 쓴다. 오늘도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이야기이다. 하루를 재우면서 함께 잠이 들었다가 자정 즈음 불쾌한 이유로 잠에서 깼다. 나는 한 번 잠이 깨면 쉽게 잠에 들지 못한다.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불쾌한 감정을 잠재운다는 목적으로 맥주를 한 캔 뜯고 넷플릭스를 켰다. 중간중간 장면을 놓쳐도 그만인, 생각하지 않고 볼 수 있는 영화를 틀었다. 이럴 땐 여러 번 보았던 영화가 더 좋다. 비슷한 연유로 자막을 읽지 않아도 되기에 한국 영화를 더 선호하지만 오늘은 외국 영화를 틀었다. 영화를 보며 맥주를 조금씩 마시고 빨래를 건조대에 걸고 식기세척기에서 나온 젖병의 물을 털었다. 우주가 저녁밥 먹는 영상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SNS에 게시하기도 했다. 피곤함을 다 게워내지 못.. 2025. 5. 29. 20250527 [개미] 개미를 관찰한다. 나무뿌리 사이 작은 구멍에서 나온 개미들이 줄지어 이동한다. 개미들은 흙길을 이차선 도로마냥 가지런히 왕래한다. 두 뼘 남짓한 거리를 오가다가 나무 데크 아래로 사라진다. 우주는 개미들보다 분주한 시선으로 개미를 좇는다. "여기가 개미집이야." 개미굴의 입구를 가리키며 설명한다. 우주는 개미집? 이거 뭐야? 개미집? 질문을 연발한다. 집 앞 나무 데크에는 10그루 남짓의 나무가 있다. 나는 그중 하나를 겨우내 지켜보았다. 혹이 많은 나무였다. 나무를 보고 있으면 할머니 눈썹 위쪽에 손톱만 하게 튀어나와 있던 점이 떠올랐다. 그런 혹이 기둥을 따라 여러 개 이어졌다. 하지만 그게 그 나무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아니었다. 작년 여름, 우주와 매일같이 산책을 했다. 하루가 태어나기 전후로.. 2025. 5. 28. 20250526 [재접근기] 우주는 지독한 재접근기를 지나고 있다. 하루의 쪽쪽이와 분유를 빼앗아 물고 밀치기도 한다. 쉴 틈 없이 '아빠 안아'를 외치다가도 혼자서 무언가를 하고 싶어 '아빠, 저리 가.' '하지 마.'를 외친다. 재접근기는 인생 첫 사춘기란다. 부모와 독립된 개체로 능동적인 무언가를 하고 싶으면서도 부모의 애정을 넘치도록 갈구한다. 연년생 동생이 있어 더욱 그렇다. 신경 써서 동생보다 더 챙겨주고 있지만, 우주의 입장에서 혼자일 때와 비교할 수 없으리라. 하루의 기어 다니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우주 가는 곳마다 하루가 따라간다. 우주는 나란히 있는 하루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좋은 감정보다는 불쾌한 감정이 더 많으리라. 샘이 날 것도 같다. 우주가 하루를 때릴 때 나도 모르게 욱해서 소리를 질러버리지만 일단은 .. 2025. 5. 26. 20250525 [이름] 일과를 마치고 우주를 카시트에 앉히며 이야기한다. "우주야 집에 가서 저녁 맛있는 거 먹자~?" 우주가 답한다. "짜요?" "짜요? 알았어 ㅎㅎ. 맛있는 거 먹고 우주 하고 싶은 거 하고 놀자~?" 우주가 다시 답한다. "쪼쪼기?" "ㅋㅋ 쪽쪽이가 제일 하고 싶어?" "응, 쪼쪼기" 나는 우주를 카시트에 앉히다 말고 크게 웃는다. 돌이켜보면 말이 참 많아졌다. 아이를 키우며 부쩍 말을 많이 한다. 뜻 모를 옹알이를 따라 하기도 하고, 사소한 풍경들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당연스럽게 지나쳤던 일상의 것들을 설명하고, 이거 모야? 우주의 질문에 열심히 답을 한다. "이따가 맛있는 거 먹자." "집에 가서 아빠랑 신나게 놀자." 이런 이야기들도 대답을 바라지 않고 하는 말이었다. 그런 이야기들에 답이 달리기 시.. 2025. 5. 25. 20250525 [안경] 안경을 바꿨다. 성인이 된 이후로는 2년마다 한 번씩 안경을 교체했다. 이번에는 4년 만이었고 이유는 두 가지였다. 시력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이 하나였고, 다니던 안경점이 없어진 것이 다른 이유였다. 시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한 시점은 국민학교 2학년 때였다. (나는 2학년 때까지 국민학교를, 3학년부터 초등학교를 다녔다.) 그때는 디지털 기기도 딱히 없던 시절이라서 아마도 책이 원인이었을 거라 짐작한다. 방에는 움푹 들어간 공간이 있었고 그곳에 책상이 놓여 있었다. 빛을 등지고 책을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서 책을 많이 읽지도 않았는데 시력이 떨어졌다.라고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다. 그냥 내 시력에 그럴듯한 책임을 붙이고 싶어서 그렇다. 1.5였던 시력은 순식간에 0.5가 되었다. 처음 .. 2025. 5. 25. 이전 1 2 3 4 5 ··· 5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