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식이 일상이다. 먹는 걸 싫어한다면 거짓말이지만 먹는 행위에서 오는 스트레스 또한 많다. 한때는 매일이 폭식이었다. 끼니에 피자 라지 한 판, 콜라 1.5리터 한 통을 다 먹었다. 그 결과로 서른에 당뇨가 찾아왔다. 그럼에도 아직도 과식을 한다. 그때에 비하면 좀 덜먹긴 하지만, 당뇨인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많이 먹는다. 눈앞에 음식이 있으면 계속 손이 간다. 과도한 섭취가 독이란 걸 알면서도 입으로 집어넣는다. 죄책감까지 목구멍으로 욱여넣는다. 먹고 나면 찾아오는 현타는 졸음과 함께 쏟아진다. 그 기름진 순환 속에 나를 통제하지 못하는 무력감을 느낀다. 어제 점심도 외식이었다. 식사를 하고 부른 배를 바라보았다. 오늘은 그만 먹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엔 가수들의 공연을 보러 독립기념관의 행사장을 찾았다. 북적이는 인파 속에서 겨우겨우 자리를 잡았다. 우주의 도시락은 미리 싸 온 상태였고, 아내는 푸드존에서 약간의 간식거리를 샀다. 나는 딱히 배고프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먹지 않고 공연을 봤다. 11시가 다되어 집으로 돌아왔고 우주를 재우면서 함께 잠이 들었다. 그리고 아침에 눈을 뜨니 속이 개운하게 느껴졌다. 가벼웠고 배고프다는 느낌도 없었다. 오랜만에 깊은 숙면을 한 것과 같은 상쾌함이 머리 대신 뱃속에서 느껴졌다. 점심 식사를 하기 전까지 공복을 이어나갔다. 먹지 않는 행위가 먹었을 때보다 만족감을 줄 수 있구나. 무턱대고 먹는 행위를 이제는 경계해야겠다고 다시금 생각했다. 아이들이 자라기 전에 뱃살 넘치는 아빠 타이틀은 없애버리자는 올해의 다짐도 떠올랐다.
4년 전, 부산에 사는 친구가 책방에 놀러온 적이 있었다. 친구는 다도를 배우고 있었는데 책방에 다도에 필요한 도구들과 좋은 차를 챙겨 왔었다. 그 근사한 차들을 마셔놓고 하는 표현이 '좋은 차' 밖에 없는 게 민망하긴 하지만. 나의 공간에서 친구에게 귀한 대접을 받고서 작품을 하나 만들었었다. '다도'라는 이름의 작품이었는데 개인적으로 애정하는 문구라서 아직도 책방 정수기 위에 작품을 걸어두고 있다. 문구는 이렇다.
"우리는 채우면서 사람이 되고, 비우면서 어른이 된다."
육아를 시작하고 나서 내 삶은 비움과 무관하게 흘러간다. 시간은 우격다짐으로 흘러가고 집안 가득 육아용품으로 채워져있다. 머릿속은 졸음 범벅이 된 생각들이 부산하고 그 안의 감정들도 행복과 우울, 후회와 만족을 넘나들며 파도친다. 그 덕분에 지난겨울은 몹시 추웠다. 그 추위를 견디려고 일기를 다시 쓰기 시작했고, 다행히 지금 마음은 호수처럼 잔잔해졌다. 넘치고 나니까 비울 방법을 알게 된 것 같다. 채워야만 채워질 것 같은데 비워야 채워지는 것들이 있다. 몸이 허락하는 선에서 공복을 더 자주 즐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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