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막글159 20250612 목 [단어 수집]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란다. 가정교육이 중요하다고도 한다. 그런 말들은 아이를 낳기 전까지 체감되지 않는 언어였다. 내가 어릴 때 집에서 받아온 가정교육은 뭐였지? 형과 싸우지 않는 것? 게임 좀 그만하라는 이야기? 편식하지 않기, 어른들에게 공손히 인사하기, 뭐 그런 것들이겠지 싶었다. 우주는 요즘 소리를 수집한다. 길 가다 들리는 포크레인 후진 소리를 '삐-삐-삐-삐-' 따라 하고, 자동차의 시동 소리를 '부릉부릉' 묘사한다. 새들이 지저귀면 '짹짹' 소리를 흉내 내고, 하루가 '떼떼떼떼' 옹알이를 하면 '하루가 떼떼떼떼 했어'라고 알려준다. 소리를 모으는 일은 어느덧 단어를 모으는 일로 성장해 간다. 저녁 식사 후에 산책을 계획했다. "다 먹고 산책 나가자?" 이야기하니, 우주는 말한다. "이거 먹고.. 2025. 6. 12. 20250606 [공복] 과식이 일상이다. 먹는 걸 싫어한다면 거짓말이지만 먹는 행위에서 오는 스트레스 또한 많다. 한때는 매일이 폭식이었다. 끼니에 피자 라지 한 판, 콜라 1.5리터 한 통을 다 먹었다. 그 결과로 서른에 당뇨가 찾아왔다. 그럼에도 아직도 과식을 한다. 그때에 비하면 좀 덜먹긴 하지만, 당뇨인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많이 먹는다. 눈앞에 음식이 있으면 계속 손이 간다. 과도한 섭취가 독이란 걸 알면서도 입으로 집어넣는다. 죄책감까지 목구멍으로 욱여넣는다. 먹고 나면 찾아오는 현타는 졸음과 함께 쏟아진다. 그 기름진 순환 속에 나를 통제하지 못하는 무력감을 느낀다. 어제 점심도 외식이었다. 식사를 하고 부른 배를 바라보았다. 오늘은 그만 먹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엔 가수들의 공연을 보러 독립.. 2025. 6. 6. 20250606 [애정의 단어] 우주는 친구 겨울이와 헤어지는 과정에서 포옹을 했다.서로를 안아주는 모습을 기대했는데 그렇지 않았다.우주는 긴장한 듯 어색한 자세로 포옹을 받았다.엉덩이는 살짝 뒤로 빼고, 손은 레고처럼 굳어있었다.포옹이 끝난 후에야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는데그 순간이 자꾸만 뇌리에 남았다. 하루가 지나고 우주와 함께 버스에 탔다.우주는 고속버스 맨 앞에 아기띠를 하고 내게 안겨있었다.평소 카시트에서는 볼 수 없었던 풍경들을 신기하게 쳐다보았다.버스 문이 열리고 탑승하는 사람들도 열심히 바라보았다.그렇게 한참 버스를 타고 가다가 그 순간이 또 떠올랐다.나는 우주에게 물었다. "우주야, 어제 겨울이가 우주 안아줬지?" "아나줘써~" "겨울이가 안아줘서 좋았어?" "조아써~" 기대했던 대답을 듣고 만족하고 있었는데 우주가 말.. 2025. 6. 6. 20250605 [사랑을 나누는 법] 주변에 연년생을 키우는 부모님들이 많다. 아이가 없을 땐 관심이 없으니 몰랐다. 아이가 생기고 둘이 되어버리니 주변의 부모님들을 다시 보게 된다. 난 그들에게 조언을 구하곤 하는데, 연년생 부모님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연년생을 키워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둘째가 만으로 1~2살이었던 때라는 것. 난 그 이야기를 들어오면서 생각해 왔다. '뭐라고? 지금도 힘든데? 더 힘들다고..?' 엊그제 아침 하루에게 분유를 먹이고 거실 베이비룸에 내려놓았다. 우리의 인기척에 일어난 우주도 거실로 따라 나왔고 나는 평소처럼 우주를 안아주었다. "우주야, 잘 잤어?" 그 순간 평소 같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하루가 자기도 안아달라며 울기 시작한 것. 항상 우주의 시샘 때문에 우주 위주로 챙기고 하루.. 2025. 6. 6. 20250603 [시간이 없다] 시간이 없다. 시간이 없어서 못했어. 시간이 없어서 죽겠어. 같은 표현을 자주 한다. 시간은 대체로 내 행동에 있어 제약이 된다. 오늘은 대선이 있는 날이다. 투표를 하고 나면 빨간 날이라는 소리다. 불과 2년 전만 하더라도 빨간 날은 내게 '가게 여는 날'이었다. 평소에 오지 못하던 손님들이 책방을 즐길 수 있는 날 정도로 생각했다. 빨간 날에 가게에 나가 노래를 틀어놓고 문을 열고 시간을 즐겼다. 엄마에게 말했다. "휴일이 되면 아무것도 못해서 일이 다 밀려." 아이들이 생긴 이후로 빨간 날에 가게를 여는 건 꿈만 같은 이야기이다. 어린이집이 휴원을 하기 때문에 아내와 종일 육아를 해야 하는 날이 돼버렸다. "그건 육아하는 엄마들끼리 하는 말인데." 엄마는 그렇게 이야기했다. 나는 맞장구를 치며 웃었.. 2025. 6. 3. 20250529 [잠] 결국 새벽 3시 반에 글을 쓴다. 오늘도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이야기이다. 하루를 재우면서 함께 잠이 들었다가 자정 즈음 불쾌한 이유로 잠에서 깼다. 나는 한 번 잠이 깨면 쉽게 잠에 들지 못한다.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불쾌한 감정을 잠재운다는 목적으로 맥주를 한 캔 뜯고 넷플릭스를 켰다. 중간중간 장면을 놓쳐도 그만인, 생각하지 않고 볼 수 있는 영화를 틀었다. 이럴 땐 여러 번 보았던 영화가 더 좋다. 비슷한 연유로 자막을 읽지 않아도 되기에 한국 영화를 더 선호하지만 오늘은 외국 영화를 틀었다. 영화를 보며 맥주를 조금씩 마시고 빨래를 건조대에 걸고 식기세척기에서 나온 젖병의 물을 털었다. 우주가 저녁밥 먹는 영상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SNS에 게시하기도 했다. 피곤함을 다 게워내지 못.. 2025. 5. 29. 이전 1 2 3 4 5 ··· 27 다음